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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

폐지 줍는 노인, 빈병 줍는 노인

독일의피터펜 2016.02.29 08:00

그리 유쾌한 주제가 아니라서 저는 이 글을 쓰기 전에 이미 예고편의 글을 써 두었습니다. (노란 선글라스, 파란 선글라스)

누군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독일은 노인은 돈이 많고, 젊은이는 가난하다. 맞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맞습니다. 젊은이는 이제 막 돈을 벌기 시작했고, 아직은 월세를 내는 신세이지만, 돈이 모이면 집을 살 수도 있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러면서 노인이 되어 가겠지요.

하지만 노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가난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난한 노인의 전형으로 흔히 "폐지 줍는 노인" 이라는 테마로 바라봅니다. 거리에 흩어진 박스, 종이, 깡통 등 재활용 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모아 재활용 센터에 팔아서 약간의 돈이라도 마련하기 위해서 애쓰시는... 종일 걸어서 폐지를 모아도 하루 만원 벌이도 힘들다고 하지요.

제가 처음 독일로 올 때는 독일에는 그런 풍경이 없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만나곤 합니다. 바로 "빈병 줍는 노인"입니다.

독일은 폐지를 수집해서 돈을 벌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대신 이분들은 병을 모아 Pfand(판트)라는 것을 통해 돈을 마련하십니다. 판트(Pfand)는 병에 대한 보증금입니다. 한국에도 빈 병을 마트에 가져가면 돈으로 돌려줍니다. 하지만 병 가격이 물품 가격에 포함된 상태라서 빈 병에 대한 가치가 희석되지요. 하지만 독일은 음료수 가격 이외에 빈 병 가격을 따로 더 받습니다. 그래서 마트에 진열된 음료수의 가격은 순수하게 음료의 가격이고, 빈 병 가격을 따로 적어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로 적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독일 사람은 자신이 사는 병의 가격을 알고 있습니다.

병 보증금인 Pfand의 가격은 병의 종류에 따라 다릅니다. 얇은 PET병의 가격은 25센트입니다. 그리고 유리병과 두꺼운 PET병은 8센트입니다. 보통 콜라 같은 음료는 25센트짜리 PET병을 사용합니다. 25센트면 물가가 싼 베를린에서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빈 병 4개 면, 1유로, 천 원 조금 넘는 가치가 있으니 이 병은 밖에서 사서 마셔도 저는 무조건 집으로 가져갑니다. 무게도 가벼우니 당연히 집에 가져가서 다른 병과 모아서 환불을 합니다.

하지만 독일인이 즐겨 마시는 맥주의 경우는 대게 8센트짜리 유리병에 담겨있습니다. 8센트면 집으로 가져가기 참 애매합니다. 게다가 유리라서 무게도 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맥주를 마시고 남은 병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분들은 그렇게 버려진 병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혹은 어떤 경우에는 초인종을 눌러서 빈 병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합니다. 8센트가 작다면 작은 금액이지만, 베를린 현지 물가나 환율을 고려해도 대략 100원 정도의 가치가 있습니다. 빈 병 10개 면, 80센트... 빵 하나와 1리터 우유를 살 수 있는 금액이 됩니다. 좀 서글프긴 하지만, 하여튼 그렇습니다. 하지만,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지저분한 쓰레기통에 깊숙이 손을 넣어서 뒤적뒤적해야만 하는 그런 일입니다. 그러면 이분들은 왜 이렇게 쓰레기통을 뒤져야만 하는 것일까요?

이 이야기의 시작은 제가 처음 독일에 온 날부터 시작합니다. 독일에 도착한 다음 날 저는 거리에서 만난 많은 걸인을 보고 저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걸의 천국 베를린"이라는 글을 쓰고는 호된 질타를 받았습니다. 뭘 알고서 글을 쓰라는 질타였지요. 속이 많이 상했고, 충격이 며칠을 가더군요. 그래서 저는 뭘 조금이라도 알고 쓰려고 많은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독일어 실력이 조금 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늘 독일 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질문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원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 일단 저와 같은 이민자 출신들은 좋은 직장을 구하기가 힘듭니다. 당연히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지요. 아무리 독일이 사회보장제도가 있다고 하지만, 그 제도권 밖에 있는 경우는 항상 생기게 마련입니다.

-. 사회보장제도의 도움을 받는 경우에도 말하자면 극단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례로 가구가 모두 갖추어진 집을 마련해 줘도, 밖에서 구걸을 할 뿐만 아니라 마련해준 가구까지 뜯어서 팔아 돈을 마련하고는 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극단적인 경우이지요.

-. 그보다 좀 덜 극단적인 경우로는 복지혜택을 받는 경우와 내가 일을 해서 버는 돈의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서 차라리 자발적 실업을 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일 하면서 버는 돈이 혜택보다 적은 경우도 발생합니다. 한국에도 비슷한 현상이 생기는 경우가 있지요.

-. 그 외에 제도권 안에 있지만, 이러 저러한 이유로 현실적인 생활비에 미치지 못하는 보장을 받는 경우에는 그 나머지 금액을 보충하기 위해서 지하철에서 신문, 잡지를 팔거나 빈 병을 모아 팔거나 그것마저 하기 힘든 형편인 경우에는 구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독일도 점차 노후에 대한 걱정이 증가하는 추세인 듯합니다. 저를 가르치셨던 나이 지긋한 선생님도 정부에서만 주는 연금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따로 사보험으로 연금보험을 들고 있다고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예전에는 나라에서 다~ 알아서 할 거라는 생각이 팽배했다면, 지금은 혹시? 라고 하는 물음표가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도 출산율이 낮아서 젊은 세대가 노년 세대를 받쳐주기 힘들 것 같다는 말씀도 덧붙이셨지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독일의 사정도 한국의 사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독일에서 시행하는 복지제도의 상당수는 이미 한국에 있는 제도였습니다. 한국에서 독일의 복지제도를 상당히 벤치마킹한 것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어쩌면 전 세계적으로 복지 제도를 시행하는 선진국은 모두 비슷하게 닮은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국가의 사회보장제도가 모두의 모든 것을 보장해 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국가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정도. 그 외에 남은 영역은 기타 사회단체와 종교단체가 다시 빠짐없이 메꾸는 식으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현재로써는 차선책이 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할머니들이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풍경을 자주 봤습니다. 손주들을 위한 것은 아니고, 허리가 굽은 할머니들에게는 지팡이보다는 유모차가 훨씬 편하다고 하시더군요. 짐도 넣을 수 있으니 더 좋다고... 그래서 어디 안 쓰는 유모차를 구할 수 없느냐고 서로 많이 물어보신다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독일 와서 보니 이렇게 편리한 수레를 전문적으로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더군요.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런 풍경만 보고 독일의 노년 생활이 마냥 부럽기만 했습니다. 이런 작은 것에 대한 배려가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점차 독일의 속살을 보면 볼 수록 사람이 사는 곳은 매 한 가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독일에서 병 줍는 노인을 보고, 한국의 폐지 줍는 노인의 이야기와 묘하게 겹쳐서 짧은 글을 쓰려고 했는데, 예고편에다가 장문의 본론까지 쓰면서 여기까지 이야기를 끌고 오고 나니 글을 마무리 하기도 쉽지 않네요.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서 쓴 글이었는데, 또 다른 숙제를 남겨둔 기분입니다. 아마도 다음 번에 다시 비슷한 주제의 글을 쓸 때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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